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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행 9번버스

'게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3.16 자식을 이기는 엄마 (5)
  2. 2008.10.04 캐나다에서 배운 고스톱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까지는 아들에게 저는 전지전능한 존재였습니다. 아들이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바로 대답해주었고, 교과 공부에 대한 궁금증도 될 수 있으면 아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를 들어서 차근차근 설명해주거나 인터넷에서 함께 자료를 찾아 주면서 정보의 효율적인 활용법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고학년이 되면서 아들은 난이도가 높은 질문을 해왔고, 조금씩 저는 당혹스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엄마의 불안함을 아들은 간파를 했는지 무불통지 엄마의 자만심이 무너지는 것에 은근히 재미를 느끼는 듯합니다.

 

아들과 설전이 벌어진 후에는 알쏭달쏭한 과학 문제들이며, 세상에서 가장 긴 단어가 뭐냐고 묻거나 자신이 현재 배우고 있지도 않는 난해한 수학 문제를 가져와서 풀어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문제 풀이에 고전하는 저를 보면서 아들은 만족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들의 고약한 경쟁상대가 되고 있었습니다.

 

최근 어느 날 의기양양한 아들이 제게 게임을 제안해왔습니다. 세 번 게임을 해서 점수를 많이 딴 사람에게 자장면을 사주자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나라이름, 두 번째는 과학자나 수학자, 세 번째는 영어 단어 끝말잇기 게임이 있었습니다.

 

사실 아들은 제안을 하기 전 두 시간 전에 방에서 무엇인가 열중한 터라 자신감이 넘쳐흘렀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시간이 경과하자 아들의 데이터는 바닥이 났습니다. 결국 두 번째 까지도 아들은 저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씰룩 거리는 표정의 아들이 제게 마지막 게임은 3점으로 하자고 합니다. 자신이 막판 뒤집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흔쾌히 동의하고 우리는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최근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아들은 마지막 게임은 자신이 있던 모양이었습니다. 아들과 저는 꽤 긴 시간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영어 끝말잇기를 해갔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가자 아들도 저도 지친 상태였지만 결국 마지막도 제가 이겼습니다. 당당했던 아들은 무슨 엄마가 자식에게 한 번도 안지는 거에요? 자식을 이기는 엄마는 이 세상에 우리 엄마 밖에 없을 거야!”고 쏘아 붙이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아들과 마주했습니다.

아들아, 엄마는 너의 경쟁 상대가 아니란다.”

 

그렇죠, 그런데 엄마랑 게임을 하든지, 문제 풀기를 하든지 제가 항상 졌잖아요. 그래서 저도 엄마보다 잘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 당연히 아직 어린 너는 지식적인 측면에서는 지금은 엄마를 이길 수 없어. 그런데 중요한 것은 너와 엄마는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지. 엄마는 네가 지식을 쌓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지 너를 이기려는 것이 아니야. 너도 게임을 하면서 몰랐던 단어의 뜻을 다시 알게 되잖아. 게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이기는 만족감이 아니라 이기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실패를 왜 했는지를 느끼는 것이란다. 엄마가 너보다 단어나 산이나 강, 도시 이름을 많이 아는 것은 너보다 더 많이 공부했고, 책도 많이 읽었기 때문이야. 네가 엄마 나이가 되면 엄마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고, 네가 노력을 더 한다면 머지 않아 엄마를 이길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너는 엄마가 어떻게 그 많은 단어들을 알 수 있을까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엄마가 일부러 너에게 져주면 진심으로 이긴 기쁨을 가질 수 있을 거 같아?”

 

엄마를 이기면 다른 친구들과의 게임에서도 잘 할 수 있을 같아서 엄마를 이기고 싶어요

 

게임에서 이기려면 준비 없이 안 되는 것은 알지? 그럼 앞으로 엄마와의 게임에서 좀더 발전적인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발전적인 방법이요? 다른 게임을 하자는 건가요?”

 

아니, 너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말이야예를 들면 a로 시작하거나 b로 시작하는 단어 등등 알파벳을 차례로 해보는 것이라든지, 숙어 맞추기, 문학가 이름이나 위인이름, 문화재나 역사적 장소 등으로 하면 너에게 훨씬 유리하고, 또 도움도 될 것 같은데…”

 

좋아요. 그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 엄마는 자장면이 아니라 피자 값 나갈 각오하셔야 해요!”

 

아들의 모습에서 저의 모습이 반사되는 것을 느낄 때마다 당혹스럽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에 형제들과 게임 하기를 좋아했고, 이기지 못하면 분함을 삭히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만 타고난 승부 근성은 아들이라 해도 수그러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엄마를 잘 이해해주고, 탓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아들에게 고맙고, 미안합니다.

 

아들아!! 피자 값으로 얼마를 써도 좋단다!! 제발 나를 이겨다오!!

 

그럼에도 저는 오늘부터 아들 몰래 영어 단어며 숙어를 외울 것입니다.^^


  1. Favicon of http://me2day.net/calcutta BlogIcon Meryl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식과 게임을 해서 지지 않는 엄마! 정말 잼있었어요.
    피자값 각오하라는 아들의 말도 너무 비장하네요...

    덕분에 하루 15분에 대한 생각을 한번 더 해보기로 했습니다. 전 너무 게을러요~ 반성...

    2009.03.17 17:53
  2. Favicon of https://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글을 읽으니 저도 게임하고 싶은 의욕이 막 솟아나요!
    게임에 이기려고 형아도 공부하고, 승객님도 공부하고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요!
    저도 엄마를 졸라 당장 게임하자고 해야겠어요.^^

    2009.03.20 16:47 신고
    • Favicon of https://bus9toparadise.tistory.com BlogIcon 승객1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외로 이런 게임이 공부 의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저도 깨달았습니다. 공부한다는 부담감을 가지지 않고 놀이하듯 하는 공부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게임은 게임이므로 너무 과열하다보면 다시 또 하고 싶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요.^^

      2009.03.20 16:54 신고

아들은 지난 여름방학 동안 예전에 영어 공부를 가르쳐주셨던 캐나다 선생님께 다녀왔습니다. 함께 배웠던 친구들 몇 명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캐나다 여행은 선생님도 뵙고, 또 선생님께 영어도 배우고, 선생님과 절친한 이웃들과 홈스테이를 하면서 캐나다 생활을 체험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아들은 처음 영어를 배웠던 선생님이라 기억도 많이 나고 보고 싶다며, 1학기 내내 저를 졸랐습니다. 여타의 단기 어학 연수와는 다르게 영어를 공부하러 간다는 목적보다는 그리운 선생님을 다시 뵙고, 여행을 통해 친구들과 우정도 다지고, 선생님의 이웃과 함께 외국의 새로운 문화 체험을 통해 아들의 시야가 넓어질 거라는 생각에 1달의 체험학습을 보냈습니다.


아들이 홈스테이를 했던 곳은 학교 교장 선생님 댁이었습니다
. 이미 대학교에 간 큰 아이들도 있고, 또한 아들 또래의 사내 아이도 있는 전형적인 캐나다의 화목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아들은 장 시간 여행에 긴장도 되고, 그 곳의 일교차가 심해서 감기에 걸리기도 했고, 홈스테이를 함께 한 친구와 약간의 마찰도 있어서 며칠간 고생을 했습니다.

 

장기간 여행에서 공동 생활을 할 경우 생활습관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지내기 때문에 마찰이 생기게 마련인데 아들 또한 친구들과 처음엔 불편함을 서로 드러냈던 모양입니다. 아들의 첫 전화에서는 감기로 인한 피곤함과 친구들과 사이가 좋지 못함을 호소했습니다. 많이 안타까웠지만 친구들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 생활이 맞지 않는 것이고, 여행에서는 집에서와는 다르므로 조금씩 양보하게 되면 불편함이 없어지므로, 아들에게 먼저 다가가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잘 지낼 거라 생각했는데 걱정스러운 전화가 오니 저도 며칠간 좌불안석이었습니다.

 

4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아들에게서 사뭇 밝은 목소리의 전화가 왔습니다. 건강이 좋아져서인지 잘 지내고 있고 재미있다며, 처음 전화에서 엄마를 걱정시켜드려 죄송하다는 의젓한 사과도 했습니다. 4일간의 걱정이 가시며 안도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의외의 말을 덧붙였습니다.

 

엄마, 나 고스톱 쳐도 되요?

고스톱? 그게 무슨 말이야? 캐나다에 화투가 있어?

친구가 가져왔는데요. 다른 애들은 다 아는데 저만 몰라요. 친구가 저에게 알려준대요.

고스톱은 일종의 도박이라서 조금 걱정이 되는 구나

걱정하지 마세요. 내기 같은 것은 안 할거에요. 그리고 친구들은 아는데 저만 모르니까 미안하고, 친구들과도 더 친해지고 싶어요.

그래 그럼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렴. 너무 오랜 시간 하지 않도록 주의 하고~

 

선생님께서도 아이들을 보낼 때 디지털기기를 일체 보내지 말라고 당부하셔서 게임기며, 하다 못해 전자사전도 보내지 않았는데 기발한 아이가 화투와 카드를 가지고 갔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캐나다 사람들은 대체로 8면 모두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아이들은 시차 적응도 잘 안되고, 한국에서는 11시경에나 잠들었기에 8시 이후 잠 못드는 시간에 뭔가 게임의 도구가 필요했을 법합니다.

 

집에서는 명절에 손님들이 많이 모여도 고스톱이나 카드를 한 적이 없어서 아들은 고스톱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리 권할 만한 놀이가 아니었기에 저도 아들에게는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금기의 놀이가 어쩌면 아들의 향수병을 해결하고, 친구와의 우정을 돈독히 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무엇인가 제지를 당하면 반대의 성향을 띠게 마련이므로 하지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게 마련입니다. 사실 아들에게 선뜻 허락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아들에게서는 친구들로 인한 갈등 같은 문제는 거의 없었습니다
. 고스톱이 새로운 우정의 끈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홈스테이 생활도 적극적으로 해서 홈스테이 가족의 학교에 가서 청소도 하고, 홈스테이 맘의 컴퓨터 문서일도, 가정 일도 열심히 도와주고, 모든 지시사항을 대표로 홈스테이 맘에게 전달받아 친구들에게 잘 전달해주어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모든 변화가 고스톱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겠지만 무엇보다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과 잘지내게 되었다는 것은 제겐 가장 안심이 되는 소식이었습니다.

 

한 달의 긴(?) 시간이 지나고 아들은 건강하게 돌아왔습니다. 그간 고생을 한 약간의 흔적이 있는 듯 얼굴은 검어지고, 좀더 말라보였습니다. 그러나 얼굴 표정은 훨씬 어른스러워졌습니다. 캐나다에서 있었던 일을 한 시간 정도 쉼 없이 이야기 한 아들은 고스톱 덕분에 친구들과 친해진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어쨌든 고스톱이 아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자 관계를 개선시키는 도구였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아들이 집에 들어서자 마자 던지는 첫 마디에 모든 가족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엄마, 우리 고스톱 한 판 칠까?

 

멀리 캐나다에서 겪은 가장 값진(?) 체험이 이거였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쩌면 고스톱이 아들과 저, 그리고 우리 가족 사이를 새롭게 연결해 가는 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저 놀이로만, 분위기 개선의 도구로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고도의 방법도 연구를 해봐야 한다는 걱정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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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란 없다. 9번 버스도 없다. 그러나 인간이 소중한 꿈을 열망하고 진지하게 실행해 나아갈 때, 우리는 파라다이스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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