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라다이스행 9번버스

제야의 종소리가 들릴 때 TV 앞에서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저마다 새해 소망을 빌었습니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 아들도 아마도 무엇인가를 다짐하는 듯한 결연함이 보였습니다.

 

불과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만해도 방학의 기쁨과 해방감으로 들떴었는데 중학생이라는 중압감이 느껴지는 지 이번 방학 때는 아들에게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친했던 친구들이 저마다 선행공부를 한다, 유명 학원으로 시험을 보러 간다는 말도 들으니 자신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나 봅니다.

 

방학하기 전부터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의 엠블럼도 책상 앞에 붙여 놓고, 방학하기 전에는학교와 학원 선생님께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여쭈어보기도 하고 함께 계획표를 만들자고 성화를 부렸습니다.

 

일단 아들과 함께 엑셀로 방학 계획표를 작성했습니다. 만들어 놓고 보니 하루에 수면 8시간, 휴식 및 식사로 4시간, 공부하는 데 10시간, 독서하는 데 2시간이라는 일정 속에 영어, 수학, 한자는 매일, 국어 사회 과학은 격일로 자습서와 문제집 2-3권을 완성하고 50권의 독서록까지 목표로하는 그야말로 숨막히는 일정표가 되었습니다.



이제 중학생인데 이런 압박감에 시달려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저도 어쩔 수 없는 교육공화국 대한민국의 엄마였습니다. 안스러운 마음보다는 어딘가 있을 허수의 시간에 촉각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 빡빡한 시간표 앞에서는 아무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불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거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요. 저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휴식도 충분히 넣었어요.

그런데 혹시라도 하루가 펑크난다거나, 혹은 미뤄지게 되면 양이 만만치 않아 그걸 다 하기가 쉽지 않을 거 같은데 그렇게 되면 계획은 무산이 되고 말텐데…”

그래도 저는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시작된 아들의 계획표는 며칠은 제법 잘 지켜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 행사나 친구들이 갑작스레 찾아온다거나 하는 변수들로 매일 해야 할 목표는 서서히 무너졌습니다.

 

매일 8 기상도 전날에 늦게까지 책을 본다거나 TV를 시청하면서 9, 심지어는 10 일어나서 밥을 먹으면, 어영부영 오후가 되고 하루의 일정표 중에는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시간만 지켜가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2주일을 그대로 보고 있다가 물었습니다.

 

네 계획표 잘 되고 있니?

“……….

계획표를 수정해야 할 것 같지 않을까?

왜요? 이 계획표가 별로 안좋은가요?

아니. 계획표가 문제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실천할 수 있는 계획표인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아.

지난 번에 네가 꼭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획표였는데 지금은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아. 이 계획표는 네가 스스로 만든 것이고 네 자신이 노력하겠다고 만든 것인데 지키지 못하면 방치되고, 네가 하려고 했던 것들을 아예 할 수 없을 거 같은데…”

저도 사실 고민돼요. 꼭 실천하고 싶었고 실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꾸 무너지게 되니까 계획표대로 하는 게 더 싫어지는 것 같아요.

네가 세운 계획표는 잘 못된 것은 아니야. 다만 너무 무리하게 하면 너를 위한 계획표가 오히려 너에게 부담을 줄 수 있을거야. 물론 너도 잘하고 싶었고, 열심히 하고 싶어서 잡은 것일텐데 처음부터 준비하는 시간을 생각지 못한 것 같아. 중학생이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긴장이 되어서 그런 것 같구나.

네 다른 친구들이 학원도 많이 다닌다고 하니까 걱정되었어요.사실.. 그리고 또 쉽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냥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게을러지기도 하고.. 저도 사실 잘못했죠.

사실 계획표는 80%만 달성하면 성공하는 것이란다. 세상의 모든 일도 모두 100% 완벽하게 되는 것이 없거든. 미처 못 달성하지 못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어야 또다시 목표를 잡을 수 있는 것이지. 그렇다고 미리부터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 안되겠지. 목표는 최선을 다해 이루도록 노력해야겠지. 그럼 네가 부담스럽지 않고 실천이 가능한 계획표를 다시 세워서 이번엔 후회없도록 하면 어떨까?

. 적어도 80%는 실천할 수 있는 계획표를 다시 짜볼께요.

 

아들은 다시 계획표를 짜느라고 끙끙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실천 가능한 목표를 잡으라고 조언을 하고 있는 저 자신도 사실은 지금까지 80%의 목표를 달성해왔나 생각해보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매 순간 신기루 같은 목표 속에 살면서 나는 왜 안되지 하면서 나 자신을 탓하기 보다는 주변이나 상황 탓을 하고 핑계를 찾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해 아들의 새로운 계획표와 함께 제 자신도 실천가능한 80%의 목표로 새해 계획표를 다시 짜보아야겠습니다.


  1. Favicon of https://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보고 막 웃었어요.
    저도 방학 시작할 때, 생활 계획표를 빡빡하게 짰다가, 거의 실패하고 지키는게 몇가지 안남았거든요. 생활 계획표를 버리느냐, 다시 짜느냐 갈등하고 있었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래도 형아는 그 빡빡한 계획표를 며칠간은 지켰군요.
    솔직히 저는 하루만에 무너졌답니다.^^

    2009.01.13 09:02 신고
    • Favicon of http://bus9toparadise.tistory.com BlogIcon 승객1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계획을 세우다 보면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나봐요.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를 얼마큼 실천해 가느냐겠지요.

      힘들어도 무엇인가를 해냈을 때의 기쁨이 참 큰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곧잘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형아의 새로운 계획표는 멋지게 성공했으면 좋겠네요.^^

      2009.01.13 13:56
  2. Favicon of https://hobaktoon.tistory.com BlogIcon 호박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한번 맘을 가다듬고~ 작심삼일 안되게.. 철이도.. 승객님도.. 잘 실천하시길 바라고용~
    연말쯤 가서 튼실한 결실 맺으시길 바랄께요^^

    "2009년 새해가 밝았쎄요~"라고 인사한지 하루지난것 같은뒈
    어느새 1월말.. 그리고 설날~ (엄훠! 곰방 호호할매 되겠어여~ 흐엉!)

    '쫌' 흔한 인삿말이지만 그래도 제일 필요한 인삿말^^
    "새해에도 건강하시궁~ 복 많이많이 받으세욥!"
    2009년도에도 더 친하게 지내요(^ㅇ^)/

    .*" "*.*" "*.
    * ● ● *
    '*./■ ▲\*'
    " *.* " 까치까치 설날~ 잘보내시구요^^;

    2009.01.22 15:57 신고
    • Favicon of http://bus9toparadise.tistory.com BlogIcon 승객1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마나~~ 호박님!! 와락~!!!!!!
      감사합니다!!! 인기 블로그 호박님의 손길을 받잡다니... ^^

      올해도 무척 많이 바쁘실 호박님이시겠지요?
      그래도 늘 건강하시고요~
      언제나 블로그에서 기쁨과 웃음을 선사해줄거라 믿습니당~!

      2009.01.22 21:06

2주전 수학학력 평가시험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이러한 류의 시험은 미리 공지를 해주어서 때가 되면 보겠지 하며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6학년이 되더니 공부에 조금 소홀해진 듯한 아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주는 공지 사항이 자신에게 불리하면 일부로 빠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살피면 알 수도 있었는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의 가방을 살펴보던 중 기간이 하루 지난 수학학력 평가시험 신청서를 발견하고 아들에게 묻자 학교 시험이 아니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뻔하겠지만

 

된 잔소리를 퍼붓고 해당 기관에 전화를 했더니 다행이 다음날까지 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신청을 하고 예상 문제집을 받아왔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는 난이도가 높아 시험 보기 전 2주일간 아들은 저녁이면 책상 앞에 붙잡혀 예상 문제를 반복해서 풀어야 했습니다.

 

드디어 시험날이 되어 아들과 함께 처음으로 시험 고사장에 갔습니다. 아들도 혼자 신청해서 보는 시험인지라 조금은 긴장이 된 모양이었습니다. 비가 왔던 일요일이었음에도 시험이 치러지는 학교 안에는 응시생과 학부모들, 그리고 학원의 지원 선생님들과 차량 등으로 빽빽하게 붐볐습니다..

 

세상에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부모들이 이런 시험에 관심이 높을 줄이야. 50분전에 도착해서 아직 고사장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지 않아 비를 피해 기다려야 했습니다. 체육관 건물 1층 기둥 사이 사이에 공간이 비어 있어서 많은 학생들과 부모들이 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몇몇 엄마들은 함께 신청해서인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시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들은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는 참 정보가 없는 무관심한 엄마였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화하던 엄마들은 다양한 시험의 일정과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과정, 그리고 좋은 점수를 배출하는 학원, 능력 있는 선생님들, 각종 영재학교나 영재교육원에 대한 노하우, 강남 엄마들은 유치원 때부터 어떻게 하는지 등등너무도 자세하게도 다양한 교육 정보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엄마들의 대화를 정리해보면 가능한 한 정보를 신속히 얻어야 하고, 정보에 따르는 과목의 등록 비용이 만만찮고, 아이들도 그 수준을 맞추어 따라가려면 엄청나게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시대의 영재는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 아이의 경쟁력에 결정 된다는 것이 우스개 소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주중에는 직장에 다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 때문에 그나마 시간이 나는 주말에 학원과 학교의 교과 과정을 중심으로 아이의 학습과정을 살펴보고 몇 가지 문제집으로 복습할 수 있도록 했고, 아이의 사고력과 논리력을 길러주려고 책을 함께 읽으면서 토론했던 나의 노력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힘이 빠졌습니다. 아빠의 빵빵한 경제력도, 모든 정보를 술술 꿰는 엄마의 대단한 정보력도 없고, 아들도 자신이 천재라고 절대 말할 수 없기에 아들이 영재가 되기는 정말 힘들 것 같습니다.

 

시간이 되어 고사장으로 향하는 아들의 손을 꼭 쥐어주고 최선을 다하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지만 고사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그 날의 궂은 날씨처럼 무거웠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거라 생각했고, 아이에게 꼭 일등이 되어야 한다고는 강요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기능적인 지식형 인간이 아닌 자신과 타인에게 당당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했는데 어느새 아들도 친구들과 다르게 공부하고 있다는 것에 은근히 걱정을 합니다. 아들은 영재가 되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런 아들의 염려를 무조건 괜찮다고 툭툭 털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이란

 

그럼에도 대화 속 엄마들이 말했던 영재의 등식은 틀린 답이라는 외침이 가슴 속에서 울렁거립니다. 처음으로 아들을 데리고 산 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들과 저녁에 대화를 하다 결국은 언쟁으로 치달으면서 서로 마음만 상한 채 정리를 못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들과 함께 쓰는 일기를 통해 무엇인가 실마리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일기를 펼쳤다.

 

엄마를 향한 항변이 그대로 묻어나는 아들의 일기는 이렇다.


제목: 어른들이 어린이를 무시하는 이유

 

요즘엔 어른들은 어린이를 너무 무시하고 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나이 어리다고 이런 무시 당하니 사회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도대체 어른들은 어린이 보다 못한 존재란 말이 지어낼 정도로 무시 세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12살 서울대 재학생은 왜 무시를 않고, 서울대생은 무시를 하지 않는 거냐하면 당연히 공부 잘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공부 맘만 먹으면 잘할 수 있다.

 

누가 더 오래 살았냐?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

생각을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어린이이다.

 

내 친구 이크발의 이크발도 어린 나이에 바로 유명인이 되어 이름을 날렸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앞으로 어른들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말을 들었으면 한다.

 

아들의 일기 속에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어린이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나의 모습, 그리고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공부라는 잣대로만 평가하는 어른들의 부당한 기준에 대한 비판이 또렷하게 나타나 있었다.

 

요즘에는 전보다 자아가 강해진 아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엉뚱한 궤변과 함께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하곤 해서 마찰을 빚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래 전부터 아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라는 이유 세 가지로 나를 설득해보라고 했고, 아들은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면 라는 이유를 먼저 찾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나 그 습성은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이제는 아들이 오히려 내게 적절한 를 요구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로 인해 아들과 나는 언쟁의 강도가 점점 높아졌다.

 

가끔 나를 참 많이 닮아가고 있는 아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아이가 원하는 정말 어른다운 엄마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곤 한다. 그래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오늘의 언쟁에서 사실 나는 좀더 이성적이어야 했고, 아들의 의견에 좀더 귀를 기울여야 했고, 일반적 사고나 상식을 강요하기 전에 인내롭게 유연한 대화를 이끌어야 했다.

 

아이의 눈에 비춰진 모순된 어른의 세상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너무도 쉽게 감정 앞에 무너지는 나의 의지로 상처받았을 아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아들의 맘 상한 일기에 적절한 답이 되는 나의 일기를 쓰는 일이 오늘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들아, 내일은 어떻게하면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을지 찾아보자. 이제는 라는 것보다 어떻게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는 연습을 해보자꾸나….

 

1 
BLOG main image
파라다이스행 9번버스
파라다이스란 없다. 9번 버스도 없다. 그러나 인간이 소중한 꿈을 열망하고 진지하게 실행해 나아갈 때, 우리는 파라다이스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by 승객1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60)
이야기가 있는 정거장 (10)
책이 보이는 풍경 (2)
창에 쓰는 워킹맘 일기 (33)
우리들의 파라다이스 (15)
공지사항 (0)

달력

«   2019/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달린 댓글

tistory!get rss Tistory Tistory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