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나는 당시에 내게 다가왔던 힘겹고 어려운 상황을 깜깜한 밤에 성난 파도에 어렵게 버텨가고 있는 작은 조각배와 아주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등대를 그렸다. 그리고 수녀님께서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두 명씩 짝을 지어 자신의 그림을 상대방에게 설명해주고, 상대방은 그 말을 듣고 그 사람의 마음의 그림에 위로하는 그림을 그려주라고 하셨다.
그날 나와 짝이었던 분은 매우 조용하고 남에 대한 배려가 깊은 분이었다. 그 분의 그림은 원안에 자그마한 꽃들이 검푸른 흙 위에서 한들거렸다. 그분은 땅에 푸른색과 검정색을 섞은 것은 너무 남을 생각하다 보니 스스로 답답하고 우울한 자신을 나타내며, 작은 꽃들은 가족에 대한 희망이라고 했다. 내성적인 자신의 모습을 좀더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싶은데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나는 그분의 그림에 자유롭고 아름답게 춤추는 여러 색의 나비를 그렸다. 그리고 푸른 하늘에 흰구름을 그려 넣었다. 또한 동그라미 주변에는 둥글고 가지런한 여러 색의 꽃잎과 그 주위에는 자유와 이상을 상징하는 새들을 그렸다. 그 분은 내 그림에 불안한 내 마음을 지지할 튼튼한 반석과 위로는 무지개 빛 영롱한 열매가 가득한 그림을 그려주셨다.
내가 그렸을 땐 동그라미 속에 뭔가 채워지지 않은 그림이었지만 그 분이 그려준 위로의 마음은 내 첫 그림을 안정되고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분도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매우 기뻐했고 집에 가서 액자에 넣겠다고 했다.
참석한 다른 분들의 그림도 첫 그림과는 너무 다른 행복하고 희망적인 그림들로 변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혼자의 생각으로는 부족하기만 했던 것들이 진실로 자신을 이해해주는 마음과 마주할 때 이렇게 기쁨과 힘을 줄 수가 있다니..나누는 행복이란 바로 이렇게 짧은 순간에도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제 가족이든 동료이든, 마음을 나누고 싶은 그 누군가가 있다면 작고 소박한 그림을 함께 그려볼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진실로 이해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방금 만났어도 마음의 문을 편안하게 열어 줄 수 있는 기쁨이라는 것을 내안에 쌓아가고 싶다.
자신과 관련이 없는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 배려하려는 마음은 좌절과 고통을 희망과 기쁨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작고 소박한 그림의 체험을 통해 소중한 깨달음을 주셨던 수녀님께 깊이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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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마음으로 대화하기란 쉽지 않은데 그림이라는 툴을 이용한다면 쉽게 가능하다니 놀라운 일이군요. 한번 시도해봄직하네요.
2008.01.06 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