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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행 9번버스

'준비형 아동'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2.10 직장 상사를 찾아가는 신입사원의 부모 (4)

지난 일요일은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을 했습니다. 혼자 참석해서 식탁의 빈자리 어색하게 앉아있는데 마침 잘 아는 어느 회사의 임원께서 제 옆에 동석하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뵙지 못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자녀가 고3이 되는 그 분께서도 자녀의 진로 문제로 고민을 하고 계셨고, 저도 이제 중학생이 되는 아들이 있어 자연히 자녀 교육에 대해 화제가 집중되었습니다. 그 분은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셔서 자녀를 돌볼 시간이 많지 않았음을 아쉬워하셨습니다. 저도  지난 해까지 이십 년 정도 일을 해왔기에 그 분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자녀의 인생의 로드맵을 만들어서 이끌어주는 알파맘과 자녀들이 하고 싶은 것을 지켜봐 주는 베타맘에 대해서 말씀 드렸더니 본인은 베타맘의 성향을 띤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일일이 자녀의 모든 것을 챙겨주고 리드해주는 알파맘이 자녀가 성장해서는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던지셨습니다.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경제력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시대라 정보력이 좋은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솔직히 저는 아이에게 너무 무관심하고, 엄마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던진 의문에 그 동안 만났던 열혈 엄마들의 성공적인 예를 열심히 이야기 했습니다.

 

엄마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는 저를 조용히 보시더니 그 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번에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신입 사원의 아버지께서 저를 만나고 싶다는 전화를 주셨어요. 직원 부모님의 전화라 혹시라도 회사와 관련하여 무슨 일이 있으신지 뵙게 되었지요. 그런데 회사와 관련한 일이 아니라 자녀를 잘 부탁한다는 뜻에서 직장 상사를 만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저는 마치 학기 초에 아이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부탁하러 학교를 방문하는 학부모를 맞는 선생님과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아마도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크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직장 상사를 뵙고 자녀에 대해 이런 저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젠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사회인이 되었는데 굳이 그런 절차가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어떤 어머님께서는 인사과에 전화를 걸어 우리 아이가 승진을 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 하게 되는지 자세하게 묻기도 했답니다. 아이들의 공부에 부모님들의 영향이 전보다 더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 생활은 입시공부나 학교처럼 공부만 열심히 잘해서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다양한 관계와 상황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적응해 가느냐는 스스로 깨닫고 헤쳐나가는 것이지 부모가 일일이 알려준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제가 요즘 부모님의 열성에 너무 예민한 것인지…”

 

말끝을 흐리셨지만 저도 뜨끔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어떤 열성적인 부모님을 비난했지만 어쩌면 저도 아들의 직장상사를 찾아가는 부모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요즘의 부모들은 전과는 다르게 자녀들의 교육과정이나 인생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인생의 로드맵을 부모가 함께 세우고 아이가 뒤처진다면 목표에 이를 때까지 끌어주고, 모든 가능한 정보를 수집하여 최고의 정보력을 구축해야 하여, 명문 학교를 보내고 있습니다. 홀어머니이고 사교육을 꿈도 못꾸는 가난한 천재가 명문대를 간다거나 의사나 판사가 된다는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경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현실입니다.

 

많은 엄마들이 자녀들을 준비형 아이로 만들기 위해 어릴 때부터 장래의 꿈을 정해놓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체험과 조기 교육이 필수조건이 되어야 하는 상황을 저는 긴장감 없이 바라보고 그저 일하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아들 친구들이 가끔 집에 놀러 오거나 우연히 학부모 모임에 참석했을 때 4학년부터 아이들이 가야 할 대학을 준비하기 위해 전문학원에서 각종 경시대회를 준비하고 있고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 공부를 하고 있다는 아들의 친구들과 그를 준비해주는 엄마들의 이야기 속에서 아들보다 제가 오히려 주눅이 들었습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변하는 아들의 꿈에 대해서 전략적인 정보보다는 그저 신기해하는 정도에 머물렀던 방관적인 엄마였다는 미안함과 아이들의 진로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도움을 주지 못할 까 조바심까지 일었습니다.

 

아들이 겨울 방학이 되자 나름대로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책도 사고, 또 주변의 다른 엄마들에게 조언도 듣고 해서 조금씩 이 시대에 맞는 엄마의 정보력을 갖추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가 배정되고, 아들도 긴장한 상태로 중학생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아들이 새로 짠 계획표를 보면서 대견함 보다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듭니다.

 

한창 순수한 꿈과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면서 자신들의 감성을 더욱더 자유롭게 가꾸어야 할 시기에 아들의 계획표는 그저 지식을 넣는 것에 급급한 시간들이 가득합니다. 최대한 자율적이고 실천 가능한 생활 계획표를 짜보라고 했는데도 아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스타일보다는 엄마가 좋아하는 계획표를 보여주었습니다.

 

, 이거 멋진 계획표인데!! 그런데 너에게는 좀 힘들 거 같은데?”

어차피, 지금껏 엄마가 말씀해주시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은 없었잖아요. 제가 힘들어도 참고 해야죠 뭐..”

 

아들이 가져온 계획표를 보면서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에 고마웠지만 자신의 의지를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지 못했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모든 일에 보다 완벽하게 실수가 없도록 하라고만 가르쳤습니다. 아들이 상처를 입었을 때 조금이라도 아플까 봐 바로 약을 발라주려고 했지 조금 지나면 아들의 몸 안에서 스스로 치유하려는 작용이 일어나 결국엔 상처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는 깨달음의 시간을 기다려주지도 않았습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했는데 제가 나서서 고기를 잡아 멋진 회와 맛있는 찌개를 만들어 주고 잘 먹는 아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고기를 잡는 법도, 찌개를 만드는 법도, 회를 치는 법, 다양한 요리가 나온다는 것도, 고기의 껍질로 멋진 핸드백을 만들 수 있고, 여성의 아름다운 입술을 만들어주는 화장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자신만의 멋진 창작품을 꿈꾸지 못하는 제가 만든 틀의 멋진 복제품이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아들이 모든 시간과 계획들을 일일이 보고해주기 바랬던 엄마의 욕심을 접고 아들이 원하는 삶에 대한 목표를 스스로 찾아 보도록 하고, 또 선생님이나 선배들의 도움도 받아보고 그 속에서 충분히 자신의 가능성과 자신감을 갖도록 기다려 줘야 하겠습니다. 아들에게도 당당하고 위대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긍정하고, 격려해야겠습니다.

 

엄마는 너의 삶을 대신할 수 없어. 다만 조언을 해줄 뿐이지. 너를 대신해서 공부도할 수 없고, 너의 친구와 친구도 할 수 없단다. 네가 엄마의 삶을 대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 네 인생의 마라톤 선수는 네 자신이지. 어떻게 시작해야 하고, 언제 힘을 내야하고, 힘이 들 때 이겨내는 것도 너의 몫이지. 좋은 경기를 하려면 계획을 잘 짜서 노력을 해야 후회하지 않겠지? 이 계획표는 엄마가 아니라 네 자신을 위한 것이야. 너의 목표에 맞고 네가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계획표를 짜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거야. 어때, 너만의 계획표를 만들 수 있겠지?”

 

몇 번을 고친 아들의 순수창작 계획표는 이제 책상 앞 아들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에 붙어 있습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될 무렵엔 저도 아들도 긴장했는데 오히려 중학생 입학이 다가오자 관대해진 엄마의 변화에 아들이 조금은 갸우뚱합니다. 이제 남보다 천천히 가는 것이 결코 늦지 않다는 희망의 증거가 되기 위해 저와 아들은 인내롭게 준비해갈 것입니다. 그리고 먼 훗날 아들의 직장 상사를 찾아가지 않아도 상사로부터 훌륭한 아들을 두었다는 칭찬을 듣고 싶은 야무진 꿈도 꾸면서….

  1. Favicon of https://hobaktoon.tistory.com BlogIcon 호박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기를 잡아서 자식에게 주기보단 고기 잡는법을 가르쳐주는 부모가 훌륭하단 말..
    공감해요^^ 승객님은 이미 후자이십니다. 그리고 철이가 바르게 크고있잖아요~
    헤헤

    하늘이 좀 구리구리합니다.
    눈이나 비가 온다는데.. 그래서 허리가 투덕투덕 쑤시는걸까요(ㅠㅠ)
    허리가 좀 투덕거릴지라도 가뭄이 해소될만큼 내렸으면 좋겠네요~

    그럼 오늘도 스마일(^---------^)하세욤~

    2009.02.24 13:15 신고
    • Favicon of https://bus9toparadise.tistory.com BlogIcon 승객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휴~ 호박님같으신 상큼 발랄, 패기 만땅이신 분이 쑤시다니요.. 그건 제 야그입니다요..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야박한 아들래미는 엄마는 운동부족이야~~~ 하면서 혀를 끌끌 차기만 하답니다..헐~!

      항상 멋진 호박님 덕분에 제가 에너지 충전하는거 아시죠!!

      2009.02.24 20:44 신고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9.03.12 16:33
  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9.03.1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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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행 9번버스
파라다이스란 없다. 9번 버스도 없다. 그러나 인간이 소중한 꿈을 열망하고 진지하게 실행해 나아갈 때, 우리는 파라다이스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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