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아버지께서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시자 어머니께서는 한동안 힘겨운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스트레스는 배우자를 잃는 것이라는데 그것도 갑작스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어머니께서는 그야말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간들이셨을 것입니다.
어느 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엄마, 화초 가꾸는 게 재미있어요?”
“응, 화초는 내가 보살피는 대로 자라주니까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구나”
내심 속으로 그 동안 어머니께 우리가 혹시라도 소홀한 게 아니었나 반성하면서 다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엄마, 너무 화초만 좋아하면 사람들이랑 이야기 하고 싶어지지 않을 거 같은데요. 지금 엄마는 사람들과 자꾸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해서 즐거운 일을 찾으셔야 할거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걱정하지 마라. 화초를 가꾸니까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게 되고 사람들이 내가 가꾼 화초를 보고 싶어서 우리 집에도 와서 이야기 하니까. 내가 우울증에 걸리지는 않을 거 같다”
봄이 되자 어머니께서는 본격적으로 화초에서 채소 가꾸기에 돌입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두 분은 주말 농장을 가꾸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께서 안 계시고 나이가 드시고 멀리 가시기 힘드셨던지 주말 농장을 아예 집에서 하시려는 눈치셨습니다.
무엇보다 옥상으로 가는 계단이 그렇게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식들 입장에서는 걱정이 더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나면 누군가에게 구조요청하기도 힘든 데 어머니께서는 그 무모한(?) 모험을 계속해나가고 계셨습니다.
지난 해 부터는 배추와 무우를 심으시면서 김장에도 보탬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올 해 옥탑 농장에는 150포기의 배추가 옹골지게 자라고 있습니다. 도심 한 복판에 150포기와 각종 채소가 있는 농장이 바로 일반 주택의 옥탑에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올 김장 배추는 안 사도 된다며 자식들에게 자랑하시는 어머니의 극성에 “어휴.. 정말 엄만 못말려!!”라고 우리 형제들은 기막혀 하지만 멜라민 사건이다 뭐다해서 어느 것 하나 믿고 먹을 만한 것이 없는 요즘 세상에 어머니의 정성으로 우리는 깨끗하고 맛난 우리 채소를 즐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옥탑 농장은
“엄마, 엄마의 깊은 뜻을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그리고 해마다 맛있는 채소를 먹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엄마, 이제는 조금씩만 하세요. 엄마도 이제는 75세시잖아요. 혹시라도 엄마가 잘못되시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구요. 제발.. 이제는 조금만 하세요.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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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여러가지인가 봐요.
2008.11.11 23:43 신고무언가 자신이 즐길 수 있는것에 흠뻑 빠지는 것이 가장 큰도움이 될 때가 많은 듯.
어머님에게도 화초를 기르면서 보내는 시간들이 아버지와의 추억을 다듬는 소중한
시간들이 되어주었네요. 어머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네, 어머님께는 화초가 동무였던 것 같아요.지금은 해마다 손자손녀들이 맛나게 먹는 오이며, 깻잎이며, 고추며 아욱, 상치 가꾸기에 바쁘시답니다. 더불어 건강해지시고, 마음도 넉넉해지셨답니다.어머님께 화초가꾸기를 배워야 할 거 같아요.^^
2008.11.12 09:48 신고저도 이곳 농장에 싱싱한 야채를 먹고싶어요...
2008.11.25 16:37너무 이쁜 화단입니다. 아마 우리엄마랑 만나게 하면 굉장할듯^^
내년 여름엔 싱싱한 고추와 상치를 선물할 수도있을 듯...^^ 아마도 두분이서 만나뵈면..비닐하우스 하나 정도는 마련되지 않을까..싶네..^^
2008.11.26 16:27 신고안녕하세요.. 간만에 들렸는데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글 입니다...
2008.12.19 12:20화분에 적당량의 물을 맞추지 못해서 연달아 실패했고, 선물받은 '란'도 물을 줄 때마다 짐이되곤 하는데 '어머님의 정성'을 많이 배워야 할 것 같군요...
연말연시 건강과 기쁨 가득하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많이 바쁘시지요. 블로그 문화를 위해 항상 애쓰시는 모습에 감사드립니다.
2008.12.19 14:17 신고저희 어머님께서는 참으로 정성스레 화초를 가꾸십니다. 아마도 자식들이 다 자라 스스로 살아가고 있기에 그 허전함을 달래시기도 하지만 자식들 좋은거 먹이시려는 마음이 더 크시지요.
늘 어머님께 감사해야하는데 자꾸 그걸 잊는 불효를 저지르곤 합니다.